책 속에 등장하는 뒤틀린 관계의 근원적인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파고들어 가면 이 책의 프랑스 번역판에 왜 ‘Misogyny(여성혐오)’라는 제목이 붙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세대를 걸쳐 오래 이어져 온 불균형한 권력관계가 현대에 이르러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일상화된 혐오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기심과 충동에 인간은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를 키건은 예민하게 포착해 낸다. 오랫동안 키건의 작품에서 다뤄진 질문을 담아낸 이 책은, 새로이 나아가지 않고 후퇴하는 자에겐 일말의 행복도 사랑도 허락되지 않으리라는 일종의 선고처럼 느껴진다.
작가 특유의 함축적이면서도 암시적인 문장,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강렬한 충격을 전달하는 기교, 사유를 매끄럽게 흘러가게 하는 탁월한 필치가 돋보이는 이번 신작은 이전 작품들에 담긴 문제의식을 한층 더 강인한 시선으로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