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우리는 절대! 못난 조상이 되지 않겠다!”
어린이들에게 나라를 되찾아주려던
광복군 장준하의 꿈!
독립운동가들은 어떤 마음으로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했을까요? 오늘날 어린이들에게 독립운동이란 역사를 기록하는 글자 그대로만 이해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독립운동가들에게 광복은 절절한 열망이었고, 꿈이었고, 후손인 어린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현재이자 미래였습니다.
민주화 운동가로도 알려진 독립운동가 장준하는 중국에 주둔한 일본 군대를 탈출해 7개월에 걸쳐 6천 리나 되는 충칭 임시정부에 이르기까지, 오직 한 가지 바람을 되뇝니다.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겠다!’
장준하는 충칭 임시정부로 향하며 목숨을 잃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도, 절대 꿈을 놓지 않았습니다. 어린이들에게 나라를 되찾아주겠다는 굳은 결심은 그가 쓴 항일 수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광복군 장준하를 지켜라!』에 등장하는 장준하의 일기는 실제 항일 수기 『돌베개』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일본에 맞서 싸워 나라를 되찾으려는 독립운동가의 간절한 바람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그 시대 장준하 아저씨를 만난 용주가 장준하의 일기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어린이 독자를 독립운동의 현장으로 한층 더 깊이 끌어당길 것입니다.
이야기를 팔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장준하의 일기를 본 용주의 선택!
부모님이 돈을 벌기 위해 멀리 떠난 후, 용주는 임시정부 청사 계단에 올라 엄마를 기다리곤 합니다. 기다리던 엄마 대신 나타난 군인 아저씨는 낯설기만 하지요. 그사이 오랜만에 삼촌이 찾아옵니다.
삼촌이 낯선 사람에게 사진을 건네고 돈을 버는 모습을 목격한 용주는 삼촌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이야기를 팔아 돈을 번다는 삼촌의 말에, 고생하는 부모님이 생각난 용주는 자신도 이야기를 팔고 싶어 합니다. 처음에는 버럭 화를 내던 삼촌은 용주가 임시정부 청사에서 군인을 만났다는 이야기에 금세 솔깃해합니다. 그 군인 이야기를 더 알아내오라는 삼촌의 말에 용주는 다시 임시정부 청사를 찾습니다.
아저씨의 일기장을 발견한 용주는 마침내 군인 아저씨의 이름이 ‘장준하’라는 것을 알아냅니다. 그런데 무심코 아저씨의 일기장을 넘기자, 뜻밖에도 일기 내용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생생하게 펼쳐지는데…. 용주는 과연 장준하 아저씨의 이야기를 팔 수 있을까요?
삼촌에게 아저씨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기 위해 용주는 장준하를 ‘계단 아저씨, 광복군, 토교대, 김영식’으로 부릅니다. 광복을 위해 애쓰는 독립운동가 장준하의 이름을 숨겨야만 하는 현실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외칠 수 없었던 당시 시대상을 대변합니다.
또한 개인의 부와 안위를 위해 동포를 배신했던 밀정과, 목숨을 바쳐서라도 후손인 어린이들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려 했던 독립운동가가 대비되는 장면은 어린이들에게 스스로 질문하게 합니다. 용주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지, 광복군 장준하가 어떤 마음으로 일본 군대를 탈출해 왔는지를 알면서도 과연 그의 이름을 팔 수 있을지 말입니다.
오늘날 다시 되짚어보는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
우리에게 광복의 의미는 무엇일까?
1919년 4월 11일, 임시정부는 3·1 독립운동 이후 일본에 맞서 싸우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일본의 압박을 피해 중국 상해에서 처음 수립한 임시정부는 이후 일본의 압력을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아야 했습니다. 임시정부는 광복할 때까지 충칭을 거점으로 삼으며, 일본에 맞서 싸우기 위해 광복군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역사의 중요한 뿌리임에도,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광복군 장준하를 지켜라!』는 충칭에서 독립운동가와 동포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잘 담아냈습니다. 주인공 용주가 사는 토교촌은 실제로 임시정부에서 동포들이 살 수 있도록 충칭 시내와 떨어진 곳에 마련한 거주 지역이었습니다. 임시정부 주요 인사들과 동포들은 충칭과 토교촌을 버스나 배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타지에서 살아야 하기에 가난했던 동포들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농장에 가서 일을 하기도 했고, 텃밭에서 먹을 작물을 기르기도 했습니다.
일본과 전쟁을 치르던 중국은 일본이 내륙에서 공격하기 어려운 충칭을 임시 수도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일본은 항공기를 이용해 폭탄을 떨어트리며 공격했고, 임시정부도 충칭에 오기 전부터 내내 일본 공습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동굴이나 방공호로 들어가 피신하면서 항일 운동을 이어 나갔습니다. 이야기를 읽으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애썼던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광복이 어떤 의미인지 되짚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