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잔고 0, 인간관계 0, 행동반경 0킬로미터, 메신저 알림 0, 0000.
존재감 0인 주인공 ‘나’는 웹툰 <0000>을 연재하던 중, 마감을 앞두고 보일러 가스가 새는 바람에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합니다. 이때 ‘나’는 이승과 저승의 중간 지대인 지하실로 납치됩니다. 그것도 검은 고양이에게!
특수요원인 검은 고양이 ‘오후’는 ‘나’에게 존재감 없이 살 수 있었던 비결을 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기의 공을 만들어 사물이 되고, 전부 쏟아부었던 일을 그만두고…이러한 ‘나’의 비법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 사랑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후는 ‘나’의 비법을 따르지 않기로 합니다. 오후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죠.
“저는 사랑보다 그리움을 먼저 배운 것 같아요. 잠시 뒤에 내가 말했다.
둘은 같은 말이나 다름없어요. 고양이가 대답했다.” (p77)
‘나’는 오후와 작별 인사 후 오후가 ‘보고 싶어’집니다. 늘 사랑과 거리를 두고 살았던 ‘나’가 처음으로 그리움이자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 거죠. ‘나’는 매일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통장 잔고 0, 인간관계 0, 행동반경 0킬로미터, 메신저 알림 0. 0을 지우기 위해, 어쩌면 우리는 너무 멀리 있는 것들만 바라보다가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사랑을 모른 채, 혹은 사랑을 잊은 채 우리는 자기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하며 차갑게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결말을 쓰고 나자 공허하게만 느껴지던 0000이 모든 것이 초기화되고 나서 새로 주어진 숫자들처럼 느껴졌어요. 저에게 0000은 이제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숫자예요.” (p86)
<0000>은 ‘이루어질 수 없을지도 모르는 헛된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은 아닐까’하고 삶을 이어갈 용기를 잃은 우리에게 용기를 건네는 다정한 책입니다. “힘든 것을 이겨내게 만드는 것도 희망.(p70)”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책. 사랑의 따뜻함을 알려주는 책. 우리의 0000을 무한한 가능성으로 바꾸어주는 책, <0000>을 여러분께 추천합니다.
-서울여자대학교 사서 업무 실습생, 김규린-